팀 헨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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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팀 헨먼은 영국의 테니스 선수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활약하며 세계 랭킹 4위에 오른 선수이다. 헨먼은 1993년 프로로 전향하여, 11번의 ATP 단식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복식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윔블던에서 4번의 준결승 진출을 기록했으며, 2003년 파리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은퇴했으며, 은퇴 후에는 BBC 중계팀에 합류하여 테니스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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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헨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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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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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 | 티머시 헨리 헨먼 |
출생일 | 1974년 9월 6일 |
출생지 | 잉글랜드 옥스퍼드 |
거주지 |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주 애스턴 티롤드 |
신장 | 185cm |
사용 손 | 오른손 (원-핸드 백핸드) |
프로 데뷔 | 1993년 (1992년부터 아마추어 투어) |
은퇴 | 2007년 |
코치 | 데이비드 펠게이트 (1992–2001) 래리 스테판키 (2001–2003) 폴 아나콘 (2003–2007) |
훈장 | OBE |
선수 경력 | |
통산 상금 | $ 11,635,542 |
단식 통산 전적 | 496승 274패 |
단식 통산 타이틀 | 11 |
단식 최고 랭킹 | 4위 (2002년 7월 8일) |
복식 통산 전적 | 89승 81패 |
복식 통산 타이틀 | 4 |
복식 최고 랭킹 | 62위 (2000년 2월 21일) |
그랜드 슬램 단식 성적 | |
호주 오픈 | 4라운드 (2000, 2001, 2002) |
프랑스 오픈 | 준결승 (2004) |
윔블던 선수권 대회 | 준결승 (1998, 1999, 2001, 2002) |
US 오픈 | 준결승 (2004) |
기타 토너먼트 단식 성적 | |
ATP 투어 월드 챔피언십 | 준결승 (1998) |
그랜드 슬램 컵 | 준결승 (1996) |
올림픽 | 2라운드 (1996) |
그랜드 슬램 복식 성적 | |
호주 오픈 | 1라운드 (1996, 1997, 1998) |
프랑스 오픈 | 3라운드 (1996) |
윔블던 선수권 대회 | 2라운드 (1994) |
US 오픈 | 2라운드 (1996) |
기타 토너먼트 복식 성적 | |
올림픽 메달 | |
올림픽 | 1996 애틀랜타 테니스 남자 복식 은메달 |
2. 성장과정 및 개인사
헨먼은 스포츠에 조예가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 사무 변호사였던 아버지 토니(Tony영어)는 테니스와 스쿼시를 포함한 다양한 스포츠에 능했다. 의류 디자이너였던 어머니 제인(Jane영어)은 윔블던 주니어 경기에 출전했던 경력이 있어, 팀과 마이클(Michael영어), 리처드(Richard영어) 3형제가 걸음마를 떼자마자 집안의 잔디 코트에서 그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쳤다.[31]
팀 헨먼은 1993년부터 프로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3년 초 세계 랭킹 774위에서 출발, 7월에는 600위권에 근접했다. 같은 해 7월 와일드카드를 받아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리는 ATP 챌린저 토너먼트에 참가했고, 11월에는 랭킹이 415위까지 상승했다. 1993년 말에는 이스라엘에서 열린 마지막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13]
증조부 역시 윔블던에 출전한 적이 있고, 외조부 헨리 빌링턴은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윔블던에 출전했을 뿐만 아니라[34] 1948, 1950, 1951년 데이비스 컵 국가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31][36] 외증조모 엘런 스탠웰브라운(Ellen Stanwell-Brown영어 또는 Ellen Mary Stowell-Brown영어)[32]은 1901년 윔블던 당시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오버헤드 서브[33]를 넣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34][35] 외조모 수전 빌링턴(Susan Billington영어)은 1950년대에 남편 헨리(Henry영어)와 함께 윔블던 혼합 복식에 여러 번 출전했으며, 1951, 1955, 1956년 윔블던 여자 복식에서는 3회전까지 진출하기도 했다.[36][35]
옥스퍼드의 사립 상급 초등학교(preparatory school영어) 드래곤 스쿨에서 공부했고, 이후 테니스 교육을 병행하는 리즈 스쿨에 다니며 10개 GCSE 시험을 통과했다. 10~17세 시기에는 ‘데이비드 로이드 슬레이터 팀’에 들어가 다른 어린 테니스 유망주들과 함께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다수의 대회에서 우승했다.
학창 시절 연골염의 일종인 골연골염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테니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1992년 영국 주니어 대회 단식과 복식에서 우승했으며, 프로 전향을 결정했다.
1999년 12월 11일, 헨먼은 긴 기간 교제한 텔레비전 프로듀서 루시 힐드(Lucy Heald영어)와 햄프셔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37] 결혼 후 세 명의 딸을 낳았는데, 첫째부터 로즈 엘리자베스(Rose Elizabeth영어, 2002년 10월 19일 런던 해머스미스 풀럼[37] 출생),[38] 올리비아 수전(Olivia Susan영어, 2004년 12월 15일 해머스미스 풀럼[37] 출생),[39] 그리고 그레이스(Grace영어, 2007년 9월 14일 출생)이다.[40]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FC의 팬이며, 싱글 핸디캡 수준의 실력을 지닌 골프광이기도 하다.[41][42]
3. 선수 경력
1994 시즌에는 4개 대회로 구성된 인도 위성 서킷에 참가, 18번의 단식 경기에서 연승을 기록했다. 크로이던에서 열린 브리티시 위성 마스터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계 랭킹 222위에 올랐다.[14]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ATP 투어에 도전, 일본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서 첫 ATP 토너먼트 예선을 통과했다. 1라운드에서 켈리 존스, 2라운드에서 대런 케이힐을 꺾었지만, 3라운드에서 피트 샘프라스에게 패했다. 이 대회 성적으로 헨만은 랭킹을 184위로 끌어올렸다.[15] 윔블던 선수권 대회 1라운드에서는 독일 선수 다비트 프리노실에게 패했다.[16]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 케냐 선수 폴 웨케사를 꺾고 그랜드 슬램 경기 첫 승을 거두었으나,[17] 2라운드에서 샘프라스에게 패했다.[18] 제레미 베이츠와 출전한 윔블던 복식 1라운드에서는 볼걸을 맞추는 실수로 오픈 시대 최초로 윔블던에서 실격당했다.[6] US 오픈에서는 1라운드에서 후안 알베르트 빌로카를 이겼지만, 2라운드에서 자레드 팔머에게 졌다. 1995년 연말 랭킹은 95위였다.[19]
1996년 윔블던 1회전에서 예브게니 카펠니코프를 꺾고 8강에 진출했으나, 토드 마틴에게 졌다.[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복식에서 닐 브로드와 함께 은메달을 획득했고, US 오픈 4회전에서 스테판 에드베리와 경기를 펼쳤다.
2001년 ATP 시즌을 세계 랭킹 10위로 시작,[8] 코펜하겐 오픈에서 우승했다. 퀸스 클럽 챔피언십 결승에서 레이튼 휴이트에게 패했고,[8] 윔블던 준결승에서 고란 이바니세비치에게 졌다.[10] 스위스 인도어스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를 꺾고 우승했다.[9]
2002년 윔블던 준결승에서 레이튼 휴이트에게 패했고, ATP 투어에서 3번의 결승(ATP 마스터스 시리즈 1회, ATP 500 시리즈 1회, 일반 ATP 토너먼트 1회)에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11] 2003년 파리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ATP 마스터스 투어 대회 유일한 우승을 기록했다.[12]
2004년 프랑스 오픈과 US 오픈 준결승에 진출, 인디언 웰스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 테니스 마스터스 컵에 마지막으로 참가했다. 2005년부터 2007년 은퇴할 때까지 그랜드 슬램 3라운드 이상 진출하지 못했다.[13] 오스트리아와의 데이비스 컵 월드 그룹 플레이오프에서 그렉 루세드스키와 함께 5경기를 모두 치렀지만 3–2로 패했고, 이후 데이비스 컵에서 기권하고 자신의 경력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14]
2005년 이후 윔블던 성적이 하락, 2005년 윔블던 선수권 대회 2회전에서 드미트리 투르수노프에게 패했다. 2006년 2회전에서 페더러와 맞붙었다. 2006년 재팬 오픈 테니스 선수권 대회 결승에 진출했지만 페더러에게 패하며 준우승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남자 투어 대회 결승전이었다.[13]
2007년 8월 23일, 2007년 데이비스컵 월드 그룹 플레이오프 크로아티아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윔블던 선수권 대회 2회전에서 펠리시아노 로페스에게 패했고, US 오픈 2회전에서 조-윌프리드 송가에게 패한 경기가 헨만의 4대 메이저 대회 마지막 경기였다. 데이비스컵 크로아티아전에서 단식 2경기와 제이미 머레이와 조를 이룬 복식 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영국 데이비스컵 대표팀의 2008년 월드 그룹 복귀를 이끌었다.[14]
헨만의 연도별 주요 대회 성적은 다음과 같다.대회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통산 우승률 통산 승-패 호주 오픈 불참 불참 2R 3R 1R 3R 4R 4R 4R 불참 3R 3R 1R 불참 0 / 10 18–10 프랑스 오픈 불참 예탈 1R 1R 1R 3R 3R 3R 2R 3R 4강 2R 2R 1R 0 / 12 16–12 윔블던 1R 2R 8강 8강 4강 4강 4R 4강 4강 8강 8강 2R 2R 2R 0 / 14 42–14 US 오픈 불참 2R 4R 2R 4R 1R 3R 3R 3R 1R 4강 1R 2R 2R 0 / 13 20–13 그랜드슬램 승-패 0–1 4–2 8–4 7–4 8–4 8–4 10–4 12–4 11–4 6–3 16–4 4–4 3–4 2–3 N/A 98–49 테니스 마스터스 컵 불참 불참 불참 RR 4강 불참 불참 불참 불참 불참 RR 불참 불참 불참 0 / 3 4–4 ATP 마스터스 시리즈 인디언웰즈 불참 불참 불참 불참 1R 8강 2R 3R 준우승 2R 준우승 8강 2R 1R 0 / 10 20–10 마이애미 불참 불참 2R 1R 4강 3R 8강 2R 4R 2R 2R 8강 3R 1R 0 / 12 16–12 몬테카를로 불참 불참 불참 불참 1R 2R 2R 8강 4강 불참 8강 1R 1R 1R 0 / 9 11–9 로마 불참 불참 불참 2R 2R 3R 2R 2R 1R 1R 3R 3R 3R 1R 0 / 11 12–11 함부르크 불참 불참 불참 불참 2R 8강 3R 1R 2R 3R 2R 3R 불참 불참 0 / 8 11–8 캐나다 불참 불참 3R 1R 4강 2R 1R 2R 3R 2R 2R 1R 2R 불참 0 / 11 10–11 신시내티 불참 불참 2R 1R 1R 8강 준우승 4강 2R 1R 3R 2R 1R 1R 0 / 12 16–12 마드리드(슈투트가르트) 불참 불참 1R 3R 2R 2R 3R 8강 2R 1R 3R 2R 3R 불참 0 / 11 10–11 파리 불참 불참 1R 2R 2R 3R 2R 2R 3R 우승 3R 불참 불참 불참 1 / 9 10–8 ATP 대회 우승 0 0 0 2 2 0 2 2 1 2 0 0 0 0 N/A 11 연말 랭킹 167 95 29 17 7 11 10 9 8 15 6 36 39 292 N/A N/A
3. 1. 주니어 시절
헨만은 옥스퍼드셔주 옥스퍼드에서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앤서니는 변호사였으며, 테니스, 하키, 스쿼시 등 다양한 스포츠에 능했다. 드레스 디자이너였던 어머니 제인은 주니어 윔블던에서 선수로 활약했으며, 가족 소유의 잔디 테니스 코트에서 헨만과 그의 형제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쳤다. 헨만의 증조부는 윔블던에서 선수로 활약했고, 외할아버지 헨리 빌링턴은 1948년, 1950년, 1951년 윔블던 선수이자 데이비스 컵 영국 대표 선수였다.[1]
1901년 헨만의 외증조모 엘렌 스탠웰-브라운은 윔블던에서 최초로 오버암 서브를 한 여성으로 알려졌다. 외할머니 수잔 빌링턴은 1950년대에 윔블던에 정기적으로 출전, 남편 헨리와 함께 센터 코트에서 혼합 복식을 했으며, 1951년, 1955년, 1956년 여자 복식 3라운드에 진출했다.[2]
헨만은 옥스퍼드셔주 웨스턴온더그린에서 자랐으며, 집 뒷마당에는 잔디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3] 그는 세 살이 되기 전에 짧은 스쿼시 라켓으로 테니스를 시작했고, 서브와 발리를 스스로 익혔다.[4] 어릴 적 테니스에 성공하지 못하면 골프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기도 했다.[5]
헨만은 롱브릿지 학교(5~7세)와 드래곤 스쿨(7~11세)을 다녔다. 모든 스포츠에서 뛰어났지만 테니스를 가장 잘했다. 나이에 비해 작았음에도 1985년 학교 테니스 팀 주장이 되어 27경기 중 21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같은 해에 학교 주니어 및 시니어 테니스 토너먼트에서 모두 우승한 유일한 학생이다.[7] 8세부터 데이비드 로이드 테니스 센터에서 코칭을 받았으며, 전 프로 선수 오니 파룬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 파룬은 헨만의 가장 큰 강점으로 "항상 그의 정신력"을 꼽았다.[8]
헨만은 서리주 코브햄에 있는 리드 스쿨 장학금을 받기 위해 드래곤 스쿨을 떠났고, 체력 테스트를 통과한 후 장학금을 받았다.[9] 11세에 금융가 짐 슬레이터가 지원하는 슬레이터 스쿼드에 합류, 9~10세의 어린 선수들을 선발하여 코칭하는 훈련을 받았다.[12] 스쿼드에서 헨만은 하루 3시간씩 테니스 훈련을 받았다.[13] 1976년 프랑스 오픈 여자 챔피언 수 바커는 당시 헨만의 게임에 특별한 점은 없었지만, "노력하는 선수"였다고 평가했다.[14] 슬레이터 스쿼드 동료들은 헨만보다 마크 모레소를 더 밝은 유망주로 평가했다.[15]
슬레이터 스쿼드 합류 직후, 헨만은 골연골염 진단을 받고 6개월간 테니스를 칠 수 없었으며, 토너먼트 복귀까지 2년이 걸렸다.[16] 리드 스쿨에서 10개의 GCSE 시험을 통과했지만, 화학 시험에는 불합격했다.[17] 16세에 헨만은 어머니에게 테니스 활동과 학업 성적 유지가 동시에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1990년 학교를 중퇴하고 단식 선수 활동에 집중했지만, 로이드와 슬레이터 스쿼드 지도부는 그를 복식 선수로 판단했다.[18] 1991년 LTA 경기를 시작했고, 17세에 8주간 남아메리카를 순회했다.[19]
1991년 첫 투어에서 헨만은 뉴 사우스 웨일스 챔피언십 1라운드 승리 후 2라운드에서 패했다. 1991년 호주 오픈 주니어 1라운드에서 패했고, 내셔널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패했다. 복식에서는 제이미 델가도와 함께 미들랜드 뱅크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20]
1992년 헨만은 노팅엄 결승에 진출했으나 패했고, 주니어 프랑스 오픈 및 윔블던 주니어 1라운드에서 패했다. 하지만 내셔널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준결승 진출 후 결승에서 닉 배글린을 꺾고 우승했다. 1992년 18세가 된 헨만은 시니어 위성 토너먼트에서 테니스 경력을 시작했다.[21]
3. 2. 프로 경력 초기 (1993-1995)
헨만은 옥스퍼드셔 옥스퍼드에서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윔블던에서 선수로 활약했고,[1] 외할아버지 헨리 빌링턴은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윔블던에서 선수로 활약했으며, 1948년, 1950년, 1951년에 데이비스 컵에서 영국 대표로 출전했다.[2] 1901년, 그의 외증조모인 엘렌 스탠웰-브라운은 윔블던에서 최초로 오버암 서브를 한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의 외할머니 수잔 빌링턴은 1950년대에 윔블던에 정기적으로 출전하여 남편 헨리와 함께 센터 코트에서 혼합 복식을 했으며, 1951년, 1955년, 1956년에 여자 복식 3라운드에 진출했다.[3]
헨만은 옥스퍼드와 비세스터 사이에 있는 인구 약 500명의 마을인 웨스턴온더그린에서 자랐다. 집에는 뒷마당에 잔디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4] 헨만은 세 살이 되기 전에 짧은 스쿼시 라켓으로 테니스를 시작했다.[5]
11세에 헨만은 금융가 짐 슬레이터가 자금을 지원하는 슬레이터 스쿼드에 합류했다. 슬레이터 스쿼드의 주요 목표는 LTA가 하는 것처럼 11세와 12세가 아닌 9세 또는 10세의 어린 선수들을 선발하고 코칭하는 것이었다.[8] 슬레이터 스쿼드에서 헨만은 하루에 3시간 테니스 훈련을 받았다. 2시간은 테니스를 치고 도널드 와트로부터 조언을 받았고, 마지막 1시간은 체조와 경기에 대한 학습에 할애했다.[9]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헨만은 최고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영국 1976년 프랑스 오픈 여자 챔피언인 수 바커는 "그 당시 그의 게임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고 평가했다.[10] 그러나 그녀는 헨만이 테니스 선수의 타고난 기술은 없었지만 "노력하는 선수"였다고 언급했다.[11]
1992년 7월부터 1993년 7월까지 헨만은 키가 6인치(약 15cm) 자라 약 1.83m 약 2.54cm(약 185cm)가 되었고, 몸무게는 7st에서 9st으로 늘었다. 그는 "주니어 시절에는 꽤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힘과 리치가 생겼고, 서브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고 인정하면서 이는 그의 경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12]
1993년 초 세계 랭킹 774위였지만, 7월에는 600위권에 근접했다. 7월, 헨만은 와일드카드를 받아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리는 ATP 챌린저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11월까지 헨만의 랭킹은 415위로 상승했다. 1993년 말, 헨만은 이스라엘에서 마지막 토너먼트에 참가하여 우승했다.[13]
그는 1994 시즌을 4개 대회로 구성된 인도 위성 서킷으로 시작했다. 거기서 그는 18번의 단식 경기에서 연승을 거두었다. 헨만은 크로이던에서 열린 브리티시 위성 마스터스에서 꽤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토너먼트가 끝날 무렵 세계 랭킹 222위가 되었다.[14] 위성 서킷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헨만은 ATP 투어에 도전했다. 헨만은 베이츠와 함께 극동으로 가서 4월 일본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서 첫 ATP 토너먼트 예선을 통과했다. 1라운드에서 켈리 존스를 6–2, 6–3으로, 2라운드에서 대런 케이힐을 6–2, 7–5로 꺾었고, 3라운드에서 헨만은 피트 샘프라스에게 6–1, 6–2로 패했다. 이 성적으로 헨만은 랭킹을 184위로 끌어올렸다.[15]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 헨만은 1라운드에서 독일 선수 다비트 프리노실에게 4세트(6–4, 3–6, 2–6, 2–6)로 패했다.[16]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 케냐 선수 폴 웨케사를 스트레이트 세트(7–6, 6–0, 6–4)로 꺾고 그랜드 슬램 경기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17] 그러나 헨만의 연승은 오래가지 못했고, 2라운드에서 샘프라스를 만나 6–2, 6–3, 7–6으로 패했다.[18] 이틀 후 그는 제레미 베이츠와 윔블던 복식 1라운드에 출전했지만, 헨만이 볼걸의 머리를 실수로 쳐서 오픈 시대에 윔블던에서 실격당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헨만은 제프 타란고와 헨릭 홀름과의 경기에서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네트 코드로 포인트를 잃은 후 좌절감에 라켓을 휘둘렀다.[6] 그는 화가 나서 공을 쳤기 때문에 심판 앨런 밀스는 이를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로 간주하여 자동 실격 처분을 내렸다.[6]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사과하며 소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7]
US 오픈 1라운드에서 헨만은 스페인 선수 후안 알베르트 빌로카를 6–3, 4–6, 6–3, 6–2로 꺾었다. 2라운드에서 헨만은 미국 선수 자레드 팔머에게 4세트(4–6, 7–6, 3–6, 1–6)로 패했다. 헨만의 1995년 연말 랭킹은 95위였다.[19]
3. 3. 정상급 선수로의 도약 (1996-2000)
헨만은 1996년 윔블던 1회전에서 그해 프랑스 오픈 우승자 예브게니 카펠니코프를 홈 관중의 응원 속에 7-6, 6-3, 6-7, 4-6, 7-5로 꺾었다. 이 기세를 몰아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으나, 토드 마틴에게 6-7, 6-7, 4-6으로 졌다.[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닐 브로드와 함께 남자 복식 은메달을 땄고, US 오픈에서는 스테판 에드베리와 4회전 경기를 치렀다.
3. 4. 전성기 (2001-2004)
헨만은 2001년 ATP 시즌을 세계 랭킹 10위로 시작했다.[8]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준결승에서 니콜라스 마수에게 패했고, 호주 오픈 4라운드에서 패트릭 라프터에게 스트레이트 세트로 패했다. 코펜하겐 오픈에서 안드레아스 빈시게라를 꺾고 우승했으며, 로테르담 오픈과 스코츠데일 오픈에서는 2라운드에서 패했다. 3월 인디언 웰스 3라운드에서 니콜라스 라펜티에게 패했고, 마이애미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 파브리스 산토로에게 패했다.[9]
4월 클레이 시즌 시작 무렵 헨만의 랭킹은 세계 12위로 하락했다.[8] 에스토릴 오픈 2라운드, 몬테카를로 8강, 로마 2라운드에 진출했고, 함부르크 마스터스 1라운드에서 패했다. 프랑스 오픈 3라운드에서 기예르모 카냐스에게 5세트 접전 끝에 패했다.[8] 클레이 시즌이 끝날 무렵 헨만의 랭킹은 11위로 상승했다.[8]
퀸스 클럽 챔피언십 결승에서 레이튼 휴이트에게 패했다.[8] 윔블던 4라운드에서 토드 마틴을 5세트 접전 끝에 꺾고, 8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4세트 접전 끝에 이겼으나, 준결승에서 고란 이바니세비치에게 3일에 걸친 경기 끝에 5세트에서 패했다.[10]
8월, 캐나다 마스터스 2라운드, 신시내티 마스터스 준결승에서 구스타보 쿠에르텐에게 패했다. RCA 챔피언십 8강에서 다시 쿠에르텐에게 패했다. US 오픈 3라운드에서 자비에르 말리스에게 5세트 접전 끝에 졌다. 스위스 인도어스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를 꺾고 우승했다.[9]
2002년, 헨만은 호주 오픈 4라운드, 윔블던 준결승에서 레이튼 휴이트에게 패했다. 프랑스 오픈 2라운드, US 오픈 3라운드에서 패했다. ATP 투어에서 3번의 결승(ATP 마스터스 시리즈 1회, ATP 500 시리즈 1회, 일반 ATP 토너먼트 1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11]
2003 호주 오픈에 불참했고, 프랑스 오픈 3라운드, 윔블던 챔피언십 8강, US 오픈 1라운드에서 앤디 로딕에게 패했다. 파리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ATP 마스터스 투어 대회 유일한 우승을 기록했다.[12]
2004년, 호주 오픈 4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고, 윔블던 준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했지만, 프랑스 오픈과 US 오픈 준결승에 진출했다. 인디언 웰스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 2004년은 테니스 마스터스 컵에 참가한 마지막 해였다. 2005년부터 2007년 은퇴할 때까지 어떤 그랜드 슬램에서도 3라운드 이상 진출하지 못했다.[13]
오스트리아와의 데이비스 컵 월드 그룹 플레이오프에서 그렉 루세드스키와 함께 5경기를 모두 치렀지만 3–2로 패했다. 헨만은 데이비스 컵에서 기권하고 자신의 경력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14]
3. 5. 선수 경력 후반 및 은퇴 (2005-2007)
2004년에 헨만은 30세의 나이로 처음으로 프랑스 오픈과 US 오픈 준결승에 진출했다. 프랑스 오픈 준결승에서는 기예르모 코리아에게 3-6, 4-6, 0-6, 5-7로, US 오픈 준결승에서는 세계 랭킹 1위 로저 페더러에게 3-6, 4-6, 4-6으로 패했지만, 두 대회 모두 서브 앤 발리에만 의존하지 않는 전천후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어떤 코트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했다.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는 8강전에서 마리오 안치치에게 패했다.[13]
2005년 이후 헨만의 윔블던 성적은 하락했다. 9년 연속 4회전 이상에 진출했지만, 2005년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는 2회전에서 드미트리 투르수노프에게 패했다. 2006년에는 2회전에서 페더러와 맞붙었다. 2006년 재팬 오픈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서 헨만은 2년 반 만에 남자 투어 대회 결승에 진출했지만, 페더러에게 3-6, 3-6으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그쳤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남자 투어 대회 결승전이었다.[13]
2007년 8월 23일, 헨만은 2007년 데이비스컵 월드 그룹 플레이오프 대 크로아티아전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현역 마지막 해인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는 2회전에서 펠리시아노 로페스에게 패했고, US 오픈 2회전에서 조-윌프리드 송가에게 6-7, 6-2, 5-7, 4-6으로 패한 경기가 헨만의 4대 메이저 대회 마지막 경기였다. 현역 마지막 무대로 선택한 데이비스컵의 크로아티아전에서 헨만은 단식 2경기와 제이미 머레이와 조를 이룬 복식 경기에서 2승을 거두었고, 영국 데이비스컵 대표팀은 2008년 월드 그룹 복귀를 확정했다.[14]
4. 은퇴 후 활동
헨만은 2007년 8월 23일 기자 회견을 통해 US 오픈과 2007년 9월 크로아티아와의 영국의 데이비스컵 경기를 끝으로 프로 테니스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고 발표했다.[20][21]
2007년 9월 22일, 헨만은 크로아티아와의 데이비스컵 경기에서 제이미 머레이와 함께 복식 경기에 출전, 윔블던 코트 1에서 4–6, 6–4, 7–6, 7–5로 승리했다. 이 승리로 영국은 월드 그룹으로 복귀했으며, 경기 후 헨만은 BBC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이런 순간과 이런 팬들이 너무나 그리울 것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은퇴 당시, 헨만은 2007년 12월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리는 시니어 테니스 이벤트 The Blackrock Masters 자선 경기에 출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전 윔블던 챔피언 스테판 에드베리와의 경기에서 프로 세트 스코어 8–4로 승리했다.
2008년부터 헨만은 2008년 윔블던 선수권 대회의 BBC 중계팀에 합류하여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2009년 5월, 헨만은 센터 코트 지붕 채택을 기념하는 테스트 이벤트에 참가하여 킴 클레이스터스와 혼합 복식 경기를 펼쳤다. 상대는 부부 선수인 안드레 애거시와 슈테피 그라프였다.
현재 헨만은 AELTC 이사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윔블던 조직의 핵심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그는 불우한 어린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자선 재단인 팀 헨만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24]
5. 플레이 스타일
패트릭 라프터와 함께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네트 플레이어였다. 발리 기술은 천재적이었으며, 서브와 스트로크도 결코 나쁘지 않아 수준 높은 선수였다.[20][21]
커리어 후반인 2000년대에는 서브 속도를 줄여 정확성을 높이는 한편, 스트로크 능력을 향상시켜 스트로커 전성 시대에도 적응하여 윔블던 외의 다른 메이저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22][23]
6. 윔블던과 헨매니아
프레드 페리가 1936년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오랫동안 영국인 남자 단식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헨매니아"라고 불리는 열성적인 현지 팬들이 등장했다. 윔블던 1번 코트 근처의 대형 모니터 앞에는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헨매니아"들이 몰려 응원하는 모습이 "헨먼 힐"(Henman Hill영어)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는 윔블던에서 헨먼의 활약이 영국 테니스계에 큰 붐을 일으켰음을 보여준다.[28][29]
이후 영국의 기대는 앤디 머레이에게 이어졌고, 머레이는 염원하던 윔블던 우승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헨먼 힐이 "머레이 마운드"(Murray Mound영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약어 설명
W | F | SF | QF | #R | RR | Q# | LQ | A | Z# | PO | G | S | B | NMS | P | NH |
W=우승, F=준우승, SF=4강, QF=8강, #R=#회전 탈락, RR=라운드 로빈 탈락, Q#=예선#회전 탈락, LQ=예선 탈락, A=대회 불참, Z#= 데이비스컵/BJK컵 지역 존, PO=데이비스컵/BJK컵 플레이오프, G=올림픽 금메달, S=올림픽 은메달, B=올림픽 동메달, NMS=마스터스 시리즈에서 강등, P=개최 연기, NH=개최 없음.
대회 | 1994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통산 성적 |
---|---|---|---|---|---|---|---|---|---|---|---|---|---|---|---|
윔블던 | 1R | 2R | QF | QF | SF | SF | 4R | SF | SF | QF | QF | 2R | 2R | 2R | 43–14 |
7. ATP 투어 결승 기록
팀 헨먼은 프로 선수 생활 동안 단식에서 11번 우승하고 17번 준우승했으며, 복식에서는 4번 우승하고 2번 준우승을 기록했다.
7. 1. 단식: 28회 (11승 17패)
팀 헨먼은 총 28번의 결승전에 진출하여 11번 우승하고 17번 준우승했다.결과 | 승-패 | 날짜 | 토너먼트 | 티어 | 표면 | 상대 | 점수 |
---|---|---|---|---|---|---|---|
준우승 | 0–1 | 1997년 1월 | 카타르 오픈, 카타르 | 월드 시리즈 | 하드 | 짐 쿠리어 | 5–7, 7–6(7–5), 2–6 |
우승 | 1–1 | 1997년 1월 | 시드니 인터내셔널, 호주 | 월드 시리즈 | 하드 | 카를로스 모야 | 6–3, 6–1 |
준우승 | 1–2 | 1997년 2월 | ECC 앤트워프, 벨기에 | 챔피언십 시리즈 | 카펫 (실내) | 마르크 로세 | 2–6, 5–7, 4–6 |
우승 | 2–2 | 1997년 9월 | 대통령 컵, 우즈베키스탄 | 월드 시리즈 | 하드 | 마르크 로세 | 7–6(7–2), 6–4 |
준우승 | 2–3 | 1998년 1월 | 시드니 인터내셔널, 호주 | 월드 시리즈 | 하드 | 카롤 쿠체라 | 5–7, 4–6 |
준우승 | 2–4 | 1998년 8월 | 로스앤젤레스 오픈, 미국 | 월드 시리즈 | 하드 | 안드레 애거시 | 4–6, 4–6 |
우승 | 3–4 | 1998년 9월 | 대통령 컵, 우즈베키스탄 (2) | 월드 시리즈 | 하드 | 예브게니 카펠니코프 | 7–5, 6–4 |
우승 | 4–4 | 1998년 10월 | 스위스 인도어스, 스위스 | 월드 시리즈 | 카펫 (실내) | 안드레 애거시 | 6–4, 6–3, 3–6, 6–4 |
준우승 | 4–5 | 1999년 1월 | 카타르 오픈, 카타르 | 월드 시리즈 | 하드 | 라이너 쉬틀러 | 4–6, 7–5, 1–6 |
준우승 | 4–6 | 1999년 2월 | 로테르담 오픈, 네덜란드 | 챔피언십 시리즈 | 카펫 (실내) | 예브게니 카펠니코프 | 2–6, 6–7(3–7) |
준우승 | 4–7 | 1999년 6월 | 퀸스 클럽 챔피언십, 영국 | 월드 시리즈 | 잔디 | 피트 샘프라스 | 7–6(7–1), 4–6, 6–7(4–7) |
준우승 | 4–8 | 1999년 10월 | 스위스 인도어스, 스위스 | 월드 시리즈 | 카펫 (실내) | 카롤 쿠체라 | 4–6, 6–7(10–12), 6–4, 6–4, 6–7(2–7) |
준우승 | 4–9 | 2000년 2월 | 로테르담 오픈, 네덜란드 | 인터내셔널 골드 | 하드 (실내) | 세드릭 피올린 | 7–6(7–3), 4–6, 6–7(4–7) |
준우승 | 4-10 | 2000년 3월 | 스코츠데일 오픈, 미국 | 인터내셔널 | 하드 | 레이튼 휴이트 | 4–6, 6–7(2–7) |
준우승 | 4–11 | 2000년 8월 | 신시내티 마스터스, 미국 | 마스터스 시리즈 | 하드 | 토마스 엔크비스트 | 6–7(5–7), 4–6 |
우승 | 5–11 | 2000년 10월 | 비엔나 오픈, 오스트리아 | 인터내셔널 골드 | 하드 (실내) | 토미 하스 | 6–4, 6–4, 6–4 |
우승 | 6–11 | 2000년 11월 | 브라이튼 인터내셔널, 영국 | 인터내셔널 | 하드 (실내) | 도미니크 흐바티 | 6–2, 6–2 |
우승 | 7–11 | 2001년 2월 | 코펜하겐 오픈, 덴마크 | 인터내셔널 | 하드 (실내) | 안드레아스 빈시게라 | 6–3, 6–4 |
준우승 | 7–12 | 2001년 6월 | 퀸스 클럽 챔피언십, 영국 | 인터내셔널 | 잔디 | 레이튼 휴이트 | 6–7(3–7), 6–7(3–7) |
우승 | 8–12 | 2001년 10월 | 스위스 인도어스, 스위스 (2) | 인터내셔널 | 하드 (실내) | 로저 페더러 | 6–3, 6–4, 6–2 |
우승 | 9–12 | 2002년 1월 |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호주 | 인터내셔널 | 하드 | 마크 필리푸시스 | 6–4, 6–7(6–8), 6–3 |
준우승 | 9–13 | 2002년 2월 | 로테르담 오픈, 네덜란드 | 인터내셔널 골드 | 하드 (실내) | 니콜라 에스퀴데 | 6–3, 6–7(7–9), 4–6 |
준우승 | 9–14 | 2002년 3월 |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 미국 | 마스터스 시리즈 | 하드 | 레이튼 휴이트 | 1–6, 2–6 |
준우승 | 9–15 | 2002년 6월 | 퀸스 클럽 챔피언십, 영국 | 인터내셔널 | 잔디 | 레이튼 휴이트 | 6–4, 1–6, 4–6 |
우승 | 10-15 | 2003년 8월 | 워싱턴 오픈, 미국 | 인터내셔널 | 하드 | 페르난도 곤살레스 | 6–3, 6–4 |
우승 | 11–15 | 2003년 11월 | 파리 마스터스, 프랑스 | 마스터스 시리즈 | 카펫 (실내) | 안드레이 파벨 | 6–2, 7–6(8–6), 7–6(7–2) |
준우승 | 11–16 | 2004년 3월 |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 미국 | 마스터스 시리즈 | 하드 | 로저 페더러 | 3–6, 3–6 |
준우승 | 11–17 | 2006년 10월 | 재팬 오픈, 일본 | 인터내셔널 골드 | 하드 | 로저 페더러 | 3–6, 3–6 |
'''범례'''
표면별 타이틀 |
---|
하드 (9–12) |
클레이 (0–0) |
잔디 (0–3) |
카펫 (2–2) |
환경별 타이틀 |
---|
실외 (5–12) |
실내 (6–5) |
7. 2. 복식: 6회 (4승 2패)
마크 우드포드짐 그라브
웨인 페레이라
다비드 리클
존 라프니 드 예이거
마르틴 로드리게스